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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열린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세계최초 극자외선(EUV)공정 7나노로 출하된 웨이퍼·칩에 서명을 하고 있다. 화성/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열린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세계최초 극자외선(EUV)공정 7나노로 출하된 웨이퍼·칩에 서명을 하고 있다. 화성/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지원 정책은 ‘삼성 감세’가 핵심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이 시스템반도체 부문에 10년간 133조원을 투자하면 수십조원에 이르는 법인세 공제 혜택을 받게 된다. 정작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기초 토양’인 중소 설계전문기업(팹리스)은 무관하다. 결국 메모리반도체 편중 구조 탓에 취약한 삼성전자의 ‘새 먹거리 만들기’에 정부가 감세로 전폭지원하는 셈이다.

정부는 최근 낸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에서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지원 대책의 하나로 세액공제를 내세웠다. 시스템반도체 설계·제조 기술 연구비를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최대 30% 공제 대상으로 삼는 ‘신성장동력·원천기술’ 목록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밝힌 연구개발비 규모는 향후 10년간 투자액 133조원 가운데 73조원이다. 30%로 단순 계산하면 세액공제액은 22조원이 된다. 이미 10나노 이하 파운드리 제조공정은 지난 2월 세액공제 목록에 포함됐다. 파운드리 시설투자액 60조원에 대해서도 세액공제가 이뤄진다. 대기업의 경우 투자비의 1%이므로 세액공제 규모는 6천억원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연구개발비와 시설투자 등 두가지 공제를 받으려면 각각 2021년 말, 2019년 말로 정해진 일몰기간이 연장돼야 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관계 기관과 깊은 공감대를 이뤘다”며 “(구체적 세제 지원 내용은) 조만간 따로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감세 지원은 삼성전자만을 위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국내 4대 파운드리업체인 ‘에스케이(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IC)’는 중국 우시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어 세제 지원 대상이 아니다. 신규 연구개발이나 시설투자를 대대적으로 하기 어려운 디비(DB)하이텍 등 작은 파운드리업체도 지원을 받기 어렵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융합전자공학부)는 “파운드리는 메모리반도체를 만들고 남은 유휴설비를 활용해 만드는 것이 훨씬 유리해 신생 업체가 뛰어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혜택은 재벌그룹을 ‘상생’으로 유인하는 ‘당근’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대-중소기업 간 수직적 거래 등에 힘입어 메모리반도체에서 큰 수익을 거둔 가운데 이뤄진 ‘지연된 미래 투자’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주상영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중소기업에 국가가 세금을 동원해 투자와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것은 정당화되지만, 충분한 자금과 정보로 자체 혁신역량을 갖춘 대기업의 투자까지 정부가 지나치게 끌고 가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이미 파운드리 사업 강화에 시동을 걸어놓은 터다. 2017년 5월 파운드리 사업부를 신설했고 지난해 대만 유엠시(UMC)와 미국 글로벌파운드리(GF)를 제치고 ‘세계 파운드리 2위’에 올랐다. 시장조사업체 아이시(IC)인사이츠 집계로 파운드리 1위인 대만 티에스엠시(TSMC)의 지난해 매출은 342억1천만달러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지난해 매출은 104억달러까지 늘어났다.


투자 역량이 풍부한 삼성전자와 달리 팹리스들은 기술개발비, 고급 인력, 위탁생산을 해 줄 파운드리와의 협력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 시장조사기관 아이에이치에스(IHS)에 따르면, 지난해 팹리스 시장 규모는 850억달러로 파운드리(710억달러)보다 크지만, 50위권 안에 드는 한국 팹리스 기업은 실리콘웍스(매출 7억달러)뿐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정책 가운데 팹리스 지원책은 상당 부분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협조와 호혜에 의존하고 있다. 파운드리 개방 확대나 민간기업 23곳으로 구성한 ‘얼라이언스 2.0’을 통한 설계 수요 창출, 민간이 주도하는 1천억원 규모의 팹리스 전용펀드 등이 모두 그렇다. 팹리스 전용펀드는 2015년에도 엔젤투자자를 통해 구성해보려 했지만 실패한 바 있다.


실제로 팹리스 기업들은 정부 대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중소기업 간에 여전한 불공정 거래 관행, 삼성 등 재벌 중심의 산업정책, 민간펀드의 실효성 등에 대한 의문 탓이다. 기술집약반도체(SoC) 분야의 한 팹리스 관계자는 “팹리스는 삼성이 동반성장 노력을 해야 ‘연구소’가 아닌 ‘시장 주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분야 팹리스 관계자는 “삼성만 1등 된다고 팹리스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국내 200여 팹리스에 정부연구개발비를 쪼개고, 삼성은 혼자 가면 이번에도 실패한다”고 했다. 스마트폰 분야 팹리스 관계자는 “정부 투자 중 팹리스 지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민간이 만든 펀드도 성과 없는 장기 투자를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