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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비즈]


정부가 30일 내놓은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에는 생산단계별 지원과 인력양성, 연구·개발(R&D) 지원으로 메모리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적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이 담겼다. 지난해 말부터 메모리 반도체 호황기가 끝나고 수출과 관련 기업 실적이 큰 폭으로 떨어지자 시장이 1.5배 더 크고 경기변동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AI), 로봇 등 5세대(5G) 이동통신기술 보급으로 새 시장이 열리는 시기라는 점도 고려됐다.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시스템반도체 저변 확대를 위해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시스템IC2010,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시스템IC2015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간 나온 대책은 모두 큰 성과가 없었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009년 2.9%에서 2018년 3.1%로 10년간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글로벌 50대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 중 한국 기업은 1곳에 불과하고, 국내 팹리스 중 매출 1000억원 이상을 올리는 곳은 6곳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하다. 파운드리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2위이지만 1위 사업자인 대만 TSMC가 시장의 48%를 점유하고 있다. 


이번 전략에서 정부는 수요 창출-설계-생산을 잇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자생적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하나의 회사가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가 주류인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시스템반도체는 설계만 하는 팹리스와 생산만 담당하는 파운드리로 분업화돼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이전에 나왔던 전략의 핵심은 팹리스 육성이 중심이었는데 이번에는 수요기업과 팹리스, 디자인하우스, 파운드리를 연계하는 생태계 문제로 접근했고 인력양성과 R&D를 함께 고민했다”고 말했다.


대책의 핵심은 팹리스에는 공공·민간분야 수요를 만들어주고, 중견 파운드리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따로 놀던 반도체 설계와 생산 분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전체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5대 전략분야인 자동차, 바이오, 에너지, 사물인터넷(IoT) 가전, 기계·로봇을 중심으로 시스템반도체를 공급하는 팹리스와 수요기업 간 ‘얼라이언스 2.0’을 구성해 수요발굴부터 기술기획, R&D까지 공동으로 추진한다. 지능형 폐쇄회로(CC)TV나 전자발찌, 교통인프라 등 공공분야에도 국내 팹리스들이 진출하도록 돕는다. 중견 파운드리를 키우기 위해 시설투자금융을 제공하고 대규모 투자와 신기술 개발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혜택도 주기로 했다. 업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석·박사급 인력 4700여명 등 고급·전문인력 1만7000명을 양성하고,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향후 10년간 범부처 합동으로 1조원을 투자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전문가들은 적시에 적절한 대책을 세웠지만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된 스마트폰 시장과 달리 지금 열리고 있는 자율주행차·인공지능·증강현실(AR)·IoT 등에는 다양한 기업이 뛰어들고 있어 시스템반도체를 키울 수 있는 적기”라며 “민간수요 확대를 위해 더 과감하게 투자하고 공공수요를 꼭 확보하겠다는 확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